
암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있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어.”
수술도 했고 항암치료까지 받았다면 당연한 말처럼 들립니다. 무거운 것은 들지 못하게 하고, 집안일도 대신하고, 밖에 나가는 것도 걱정하게 됩니다.

치료 직후에는 분명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에도 계속 움직임을 줄이는 것이 과연 좋은 회복 방법일까요?
최근 암 생존자 약 26만 명을 분석한 국내 연구가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암 진단 전후의 ‘움직임’을 비교해봤습니다

이번 연구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이용해 암을 진단받은 성인 26만659명을 분석했습니다.
2009~2015년 암을 진단받고 3년 이상 생존했으며, 암 진단 전후 건강검진 자료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단순히 운동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암 진단 전과 이후를 비교해 신체활동이 줄었는지, 유지됐는지, 늘었는지를 살펴보고 이후 치매 발생을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높은 신체활동을 유지한 사람과 비교했을 때 활동량이 감소한 사람은 치매 위험이 더 높은 방향의 연관성을 보였습니다. 조정 위험비(aHR)는 1.46이었습니다.
반대로 활동량을 유지하거나 늘린 경우에는 더 낮은 치매 위험과 연관됐고, 특히 항암화학요법을 받은 사람에서 이런 관계가 더 뚜렷했습니다.

다만 이 연구는 관찰연구입니다.
따라서 **“운동을 하면 치매를 예방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암 진단 이후 신체활동의 변화와 장기적인 인지 건강 사이에 의미 있는 연관성이 발견됐다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치매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이 연구에서 더 눈여겨본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암 진단 전과 후의 활동량이 어떻게 달라졌느냐를 봤다는 점입니다.
큰 병을 겪으면 몸을 아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문제는 치료가 끝나고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는데도
‘암을 앓았으니 계속 쉬어야 한다’
는 생각이 굳어지는 경우입니다.
실제로 운동과 암에 관한 연구들은 치매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미국임상종양학회(ASCO)는 암 치료 중 시행하는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이 피로를 줄이고 심폐체력·신체기능·근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일부 환자에서는 삶의 질이나 불안·우울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관찰됐습니다.
2025년 발표된 또 다른 국내 연구도 흥미롭습니다.
암 생존자 21만5,191명을 분석했는데, 암 진단 전에는 활동적이지 않았더라도 진단 후 신체활동을 시작한 사람에게서 전체 사망 위험이 낮은 방향의 연관성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 역시 관찰연구이므로 운동 자체의 인과효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암 치료 이후의 움직임은 치매 하나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치료로 떨어진 체력과 근력을 되찾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여기서 운동이라고 하면 헬스장이나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부터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암 치료 후의 첫 운동은 그보다 훨씬 소박할 수 있습니다.
걷기 — 가장 부담 없이 다시 움직이는 방법

가장 접근하기 쉬운 것은 역시 걷기입니다.
처음부터 만 보를 채우거나 한 시간씩 걸을 필요는 없습니다.
몸 상태가 허락한다면 집 주변을 짧게 걷고, 괜찮으면 시간이나 거리를 조금씩 늘리는 방법이 현실적입니다.
미국암학회도 암 생존자가 신체활동을 시작할 때 천천히 시작하고 몸의 반응을 살피면서 점차 늘리는 방식을 권합니다.
걷기의 장점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쉽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10분 걸었다고 내일 반드시 20분을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많이 했느냐’보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에 먼저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걷기에 익숙해졌다면 근력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암 치료를 거치면서 체중에는 큰 변화가 없어도 근력과 체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몸 상태가 좋아진 뒤에는 가벼운 근력운동을 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무거운 운동기구를 들 필요는 없습니다.
의자에서 천천히 앉았다 일어나기, 가벼운 밴드를 이용한 운동처럼 부담이 적은 동작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ASCO 역시 암 치료 과정에서 유산소운동과 함께 근력운동을 권고하고 있으며, 관련 연구에서는 근력과 신체기능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결과가 확인됐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암학회가 일반적인 암 생존자에게 주당 150~300분의 중강도 활동 또는 75~150분의 고강도 활동과 근력강화 활동을 건강 목표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치료를 막 끝낸 사람이 이 숫자부터 맞추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목표치는 목적지이지 출발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이 굳어 있다면 스트레칭부터 해도 됩니다

오랫동안 치료를 받고 활동량이 줄었다면 예전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관절을 천천히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어깨와 팔을 부드럽게 움직이고, 종아리와 허벅지를 천천히 늘리는 정도입니다.
굳어 있던 몸을 깨운다는 느낌으로 시작하고 걷기나 근력운동으로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는 방법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들이 하는 운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몸에서 가능한 움직임을 찾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운동 처방을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암의 종류와 병기, 수술 부위, 항암·방사선치료 여부가 모두 다릅니다.
빈혈이나 심한 피로가 있을 수도 있고, 뼈가 약해졌거나 림프부종 위험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암학회 역시 암 환자와 생존자가 운동을 시작하거나 활동량을 크게 바꾸기 전 치료팀과 상의하도록 권합니다.
특히 치료를 막 끝냈거나 통증·어지럼증·호흡곤란 등 이상 증상이 있다면 스스로 운동량을 늘리기보다 의료진에게 먼저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혼자 걷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암 재활이나 전문가가 관리하는 운동 프로그램이 더 적합할 수도 있습니다. ASCO 역시 치료 후 기능 제한이나 동반질환이 있는 일부 환자에게는 감독하 운동이나 암 재활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마무리 — 때로는 “쉬어”보다 “같이 걸을까?”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큰 병을 앓은 사람을 보면 주변에서는 자꾸 무언가를 대신해주고 싶어집니다.
장바구니도 들어주고, 집안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조금만 힘들어 보여도 앉아서 쉬라고 합니다.
모두 걱정해서 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배려의 방식도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몸이 회복되고 의료진도 움직여도 괜찮다고 했다면,
“그냥 쉬어.”
라는 말 대신
“오늘은 같이 조금 걸어볼까?”
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공원을 한 바퀴 다 돌지 않아도 되고 중간에 벤치에 앉았다 돌아와도 괜찮습니다.
암 치료가 끝났다고 예전의 몸으로 하루아침에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복이라는 말을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지금의 몸으로 다시 생활을 만들어가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작이 거창한 운동일 필요도 없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가는 작은 움직임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상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일 수 있으니까요.

※ 이 글은 암 생존자의 신체활동에 관한 연구와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작성한 건강정보입니다. 암 종류·치료 과정·현재 건강상태에 따라 적절한 운동의 시기와 종류, 강도가 다를 수 있으므로 치료 후 운동을 시작하거나 크게 늘릴 때는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자료
- Lee SK, Han M, Park S, et al. Impact of Changes in Physical Activity on Dementia Risk Among Cancer Survivors: A Nationwide Cohort Study Comparing Chemotherapy and Non-Chemotherapy Groups. Cancer Research and Treatment. 2026.
PubMed 연구 원문 정보 - Ligibel JA, Bohlke K, May AM, et al. Exercise, Diet, and Weight Management During Cancer Treatment: ASCO Guideline. Journal of Clinical Oncology. 2022;40:2491-2507.
ASCO 가이드라인 - American Cancer Society. Guideline for Diet and Physical Activity for Cancer Survivors. 암 생존자의 신체활동 및 운동 안전수칙.
미국암학회 암 생존자 운동 가이드 - Bui TT, Park E, Kang HY, et al. Changes in Physical Activity and Mortality Risk among Korean Cancer Survivors: A Population-Based Cohort Study. Cancer Epidemiology, Biomarkers & Prevention. 2025;34:1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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